-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승인 2019.07.11 08:10 수정 2019-07-11 21:17
임신·출산·육아 아닌 근로조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경력단절여성’이라는 용어가 법적 용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경력단절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법률을 가지고 있다. 경력단절여성등의 경제활동 촉진법'(이하 경력단절여성법)이 그것이다. 이 법은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촉진을 통하여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자아실현 및 국가경제의 지속적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제1조) 으로 2008년 6월 5일 제정되어 같은 해 12월 6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올해 11년째를 맞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경력단절여성등’이란 혼인·임신·출산·육아와 가족 구성원의 돌봄 등을 이유로 경제활동을 중단하였거나 경제활동을 한 적이 없는 여성 중에서 취업을 희망하는 여성을 말한다”(제2조제1호).
이 법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은 정부가 경력단절여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그동안의 지속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현재 50% 정도 수준에 불과하여 다른 선진국에 비하여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바, 이는 여성의 임신·출산·육아 부담에 따른 경력단절과 노동시장 이탈, 하향취업 그리고 재취업의 어려움 등에 그 원인”이 있고, “국가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경력단절여성의 경제활동을 촉진시킬 필요”가 있다(경력단절여성법 제정 이유, 법제처).
경력단절여성법은 국가가 여성의 경력단절을 성 역할(?)에 근거한 강요된 선택으로 보고, 정책적 개입을 할 수 있는 법·제도적 인프라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 법률을 소관하는 여성가족부에는 ‘경력단절여성지원과’가 만들어졌다. 이 조직에서는 경력단절여성의 경제활동촉진을 위한 정책의 기획·종합 및 기본계획 수립 뿐 아니라 경력단절여성 취업촉진 사업의 개발·추진,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통한 취·창업 정보 제공 및 상담, 직업교육훈련, 인턴십 및 취·창업 연계 지원 등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력단절 예방 및 경제활동 촉진 관련 사항을 담당한다.
이처럼 그동안 여성노동정책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경력단절여성을 정책 대상으로 포섭하고, 관련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정책을 시행해 온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 법은 이런 유의미성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터인지 ‘경력단절’을 여성이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관문처럼 여겨지게 했다. 우리 사회는 여성이 결혼, 임신과 출산이라는 생애사적 사건으로 인해 경력단절을 한다는 가정에 대해 별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모두가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결혼했다고 해서 아이를 낳는 것도 아니다.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양육을 이유로 모든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는 선택을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처럼 경력단절여성법은 여성의 경력단절을 결혼과 임신‧출산이라는 생애사건에만 관련된 것으로 구성하여 성차별적인 노동시장의 구조가 여성들의 경력단절을 계속해서 재생산시키고 있고, 이의 해결로까지 확장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2017년 발표된 ‘서울시 여성의 경력단절 경로 및 영향요인 분석'(국미애·이화용) 보고서에 의하면 경력단절 요인으로 ‘근로조건’을 꼽은 비율이 가장 높고(27.5%) 결혼, 임신, 출산 등 생애사건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13.7%로 절반에 그친다. 이는 결혼, 임신, 출산 등 생애사건은 일을 그만두는 계기일 수는 있으나 경력단절을 가져오는 주요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 경력단절여성법이 제정된 2008년과 비교해 2019년 현재, 여성의 노동생애와 노동환경 등에는 많은 변화가 있다. 가족 구성과 가구 형태도 변화해 1인 가구가 증가했고 가족의 다양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청년노동시장도 비혼, 만혼, 저출생이라는 변화를 뚜렷하게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큰 성별임금격차, 가장 낮은 유리천정 지수 등 노동시장의 성차별적 구조는 본격적으로 가시화되었다.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노동세계의 패러다임이 변화되고 있다.
미투 운동 이후의 한국 사회를 상상할 때 여성노동정책의 방향은 여성의 노동생애와 노동환경의 변화 속에서 성차별적인 노동시장과 그 구조에 주목해야 한다. 여성일자리의 질 개선과 고용의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차별을 개선하고, 성평등한 노동세계 구축을 위한 인프라 마련에 모아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경력단절여성법은 여성고용·일자리 문제를 포괄하는 정책적 근간이 될 수 있는 법률로 그 위상과 역할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