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부족 중소기업 육아휴직 사용은 비현실적
“기업 문화 바꾸고 기존 제도의 실효성 높여야”
[더팩트ㅣ장혜승 기자] # 모 중소기업에 다니는 정규직 A 씨는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몸이 안 좋아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회사에서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권고사직을 수용하거나, 정규직이 아닌 기간제로서 근로계약기간 만료를 인정하라’는 제안을 했다. 서울시동부권직장맘지원센터가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자 사측은 해고를 철회했고 A 씨는 간신히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었다.
# 또 다른 중소기업에 다니는 정규직 B 씨는 유산 경험이 있는 데다가 첫째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고민 끝에 임신 중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B 씨는 구두로 사업주에게 육아휴직 승인을 받고 육아휴직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회사는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며 육아휴직 승인을 거부했다.
육아휴직 기간을 현행 부부 합산 2년에서 3년으로, 배우자 출산휴가를 10일에서 20일로 늘리는 내용 등이 담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법’ 개정안이 지난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직장인들에게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인력이 적은 중소기업의 경우 육아휴직 사용 자체가 비현실적이란 지적이다.
28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20~30대 직장인들은 이번 개정법안에도 현장에서는 실제로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퇴사를 종용받거나 해고당하는 등 불이익 우려로 마음 놓고 육아휴직을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대체인력을 구하기 마땅치 않은 중소기업에서는 더욱 육아휴직을 쓰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서울에서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모(33) 씨는 “육아휴직 기간을 늘리는 방향성은 좋은데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 다니는 사람들에겐 현실적이지 못하다”며 “실제로는 육아휴직을 쓰면 그냥 잘리는 판국”이라고 꼬집었다.
장모(31) 씨도 “실질적으로 부모 한 사람당 1년6개월씩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는 곳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며 “확대도 확대지만 기존 있는 거라도 편하게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대기업이야 메꿔줄 인력이 있지만 중소기업이나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여성을 더 안 뽑으려 할 것”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고용노동부의 2023년 육아휴직 급여 수급자 현황에 따르면 육아휴직 전체 사용자 42.3%가 300명 이상 사업체 종사자였다. 10명 미만 사업체 종사자는 17.8%에 그쳤다.
어렵게 육아휴직을 쓰더라도 불합리한 처우를 감수해야 할 때도 있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직장인 C 씨는 “육아휴직을 사용하겠다고 말하자 대표가 직원들에게 내 뒷담화를 하고 다녔다”며 “‘그냥 실업급여를 타게 해달라고 하고 퇴사를 했어야 한다’, ‘이래서 회사가 여자를 안 뽑는 것’이라는 등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직장인 D 씨는 “육아휴직 뒤 복직을 거부당하고 열악한 조건의 근로계약서에 사인하거나 퇴사할 것을 강요받았다”고 호소했다.
임신·출산·양육을 지원하는 제도가 생기고 확대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인식 개선을 통한 기업 문화를 바꾸고 기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작업이 먼저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모(33) 씨는 “남편이 대기업에 다니는데 막상 남자도 육아휴직을 쓴다고 하면 승진에서 멀어지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하더라”며 “육아휴직을 쓰면 불이익을 당하는 기업 문화를 개선하지 않는 한 육아휴직 기간을 늘린다고 애를 낳을 것 같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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